[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서울특별시에는 충무로와 을지로가 있다. 충무로와 을지로라는 이름은 원래 있었던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 ‘경성’을 ‘서울’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우남시’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우상화 작업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이승만 우상화 작업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우상화 작업은 자유당 시절 상당했다. 지폐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상이 그려졌다.
그리고 1956년 80세를 축하하는 의미로 탑골공과 남산 조선신궁터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남산 조선신궁터에 있었던 동상은 25m인데 척 단위로 환산하면 81척이다.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80세 생을 축원하는 의모로 80척에 진일보 한다는 뜻으로 1척 더해 81척이 된 것이다.
1955년에는 수도인 서울의 이름을 바꾸겠다고 대통령 담화를 했고, 공모전을 열었는데 1위가 ‘우남시’였다. 그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호’였다. 하지만 당시 최현배 등 국어학자의 반대에 부딪혔고, 이승만 전 대통령 스스로 어이 없다고 느끼면서 철회했다.
하지만 ‘우남’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우남로’이다. 또한 서울 남산공원과 부산 용두산공원은 ‘우남공원’이라고 개명했고, 현재 서울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문화회관은 ‘우남회관’이었다.
일본 경제와 중국 경제 누르자는 차원에서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면서 서울 시내 곳곳에 있던 일본식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보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혼마찌는 일본 상인들이 장사를 하던 곳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 상업 중심지였기도 했다.
그런데 광복을 맞이하면서 혼마찌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일본 최고 상업 중심지인 이곳의 ‘일본 기(氣)’를 누르겠다는 생각으로 떠올린 이름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시호인 ‘충무공’을 따서 ‘충무로’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충무로는 한때 영화의 중심지가 됐다.
서울 시내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화교가 모여사는 차이나타운이 있었다. 광복 이후에도 차이나타운은 형성돼 있었는데 정부가 ‘화교의 기’를 눌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을 차용해서 ‘을지로’라고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화교 상업 중심지에서 현재는 우리 경제의 중심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