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제국익문사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운영했던 비밀첩보기관이다. 신문사 형태를 띄고 있지만 비밀첩보조직이고, 61명이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누가 활동했는지 명확하게 파악된 바가 없다.
알려진 활약에는 을사늑약을 무효화하기 위한 활동, 안중근 의사의 재판 관할 권한을 일본에서 러시아 법정으로 옮기려는 시도, 독립운동 자금 전달 등이 있다.
누가 활동했는가
제국익문사는 1902년 6월 대한제국 고종황제 직속으로 설립한 비밀첩보기관이다. 해당 기관은 황제의 밀서를 외국에 보내거나, 국가 기밀을 외국에 넘기는 고관대작, 서울 주재 외국 공관원 동정 등을 탐지하고, 개항장을 감시하면서 항구에 드나드는 군함 등의 동정을 살폈다.
또한 일본제국이 저질렀던 위조화폐 유통 등에 대해서도 감시를 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국가정보원과 같은 역할을 했다.
공식적으로는 ‘신문사’의 외형을 가졌다. 이에 표면적으로는 ‘매일 사보’를 발간하는 형태를 띄었다. 언론사 형태를 갖춰야 그만큼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고를 할 때는 화학비사법을 사용했다. 과실즙이나 화학용액을 이용해 투명하게 글씨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자두꽃 무늬와 성충보좌라는 글씨가 새겨진 제국익문사 고유의 인장을 사용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누가 제국익문사에 소속돼서 활동했는지 오늘날에도 밝혀진 바가 없다.
비자금 조성
고종황제는 제국익문사 활동을 위해 비자금을 형성했다. 이에 왕실수입을 늘려나갔다. 이렇게 늘린 비자금을 외국은행에 예치를 시켰고, 제국익문사는 외국은행에 예치된 비자금을 사용했다.
당시 상해 로청은행에 40만냥, 독일계 덕화은행에 25만불 예금이 예치됐는데 제국익문사 활동 자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독립운동 자금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제국익문사는 1920년까지 활동을 했는데 고종황제가 1919년 서거하자 일본제국은 제국익문사의 문을 닫게 했고, 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국익문사를 계승해서 지방선전부를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