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대운하
[역사속 경제리뷰] 대운하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8.0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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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대운하는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운하를 말한다. 수나라 때부터 건설했던 것으로 중국의 역사와 함께 한 대운하이다.

중국은 남북이 분단되면서 경제문화적으로 남북간의 차이가 컸다. 특히 진나라와 한나라 때는 중원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지만 위진남북조시대 때 한족이 대거 남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그때부터 강남 이남땅의 개발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경제적 차이가 커지게 됐다.

진나라와 한나라 때는 쌀 생산량이 중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위진남북조시대는 강남 이남 땅에서의 쌀 생산량이 중원에서의 쌀 생산량을 압도하게 됐다. 문제는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면서 강남땅에서 생산된 쌀을 중원으로 운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나라 때부터

중국 통일왕조는 그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육로로 쌀을 운반한다는 것은 비용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운하’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수문제가 대운하를 생각했지만 완성시킨 사람은 수양제이다. 다만 대운하를 건설할 때 운하를 따라 40여 개 행궁을 지었고, 도로를 만들었다. 즉, 대운하만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동원된 백성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백성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고구려 침공의 실패가 이어지면서 결국 수나라가 망했다.

수나라가 망했지만 수양제가 만든 대운하 혜택을 받은 나라는 ‘당나라’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가 급속도로 팽창이 가능했던 것도 대운하 때문에 강남에서 생산된 쌀이 수도 장안으로 운반이 용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토번을 토벌하고, 중앙아시아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강남땅의 쌀을 수도로 운반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나라 때 파괴

다만 송나라가 들어서고 금나라가 송나라 북쪽을 차지하면서 송나라는 강남땅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금나라가 쳐들어올까 두려워하면서 결국 대운하를 파괴했다. 송나라 이후 원나라가 생겨날 때도 대운하를 개통할 생각을 하지 않고 강남땅에서 생산된 쌀을 주로 해로(海路)를 이용해서 운반을 했다.

그러다보니 원나라 때 바다에 해적이 많이 생겨났다. 원나라가 해적 때문에 멸망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경항대운하를 만들었다. 베이징에서 항저우까지 뚫은 것이다. 이때 대운하를 직선으로 뚫었기 때문에 운송량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청나라 때에도 대운하를 통해 강남의 쌀이 베이징으로 운반됐다. 아편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영국군이 해안선을 따라 점령해 나갔을 때에도 청나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영국군은 작전을 바꿔 대운하를 타고 점차 북상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난징을 함락할 기미를 보이자 결국 청나라는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즉, 청나라 입장에서는 대운하가 봉쇄된다면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난징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대운하는 오늘날에도 이용을 하고 있지만 철도, 자동차, 비행기 등의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그 비중은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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