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5년 8월 9일은 소련의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을 개시한 날이다. 일명 만주 작전이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기도 하고,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게 만든 작전이기도 하다.
일본제국은 100만이라는 관동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에 속수무책 무너졌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그만큼 소련군의 진격속도는 무서웠고, 그러다가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 전역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 일본은 관동군이 무너지자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했다. 소련에 항복하는 것보다 미국에 항복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은 미국 중심 연합군
태평양전쟁과 중일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주축이었다. 그러다보니 일본제국은 만주에 있는 관동군을 빼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곳곳에 배치했다. 그러다보니 관동군의 전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련은 독일을 상대하느라 만주 등을 공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일본제국이 가지면서 만주 관동군 전력 상당수를 태평양전쟁에 투입했다.
여기에 1941년 4월 ‘소-일 불가침조약’ 등으로 인해 일본제국은 안심하고 태평양전쟁과 중일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1945년 5월 독일이 무조건 항복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독소전쟁에서 소련이 승리를 하면서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참전을 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테헤란 회담과 얄타 회담을 통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련은 독소전쟁에서 워낙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소련은 유럽에서 승리한 후 3개월 이내에 만주를 공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8월 중순 만주지역에 전면적인 공세하겠다고 밝혔고, 5월 9일 독소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8월 9일 작전을 개시했다.
관동군의 어이없는 패배
소련군이 참전을 하자마자 관동군은 어이없는 패배를 했다. 워낙 약체가 됐다고 하지만 100만 관동군이라는 점에서 소련군에게 너무 어이없게 무너졌다는 평가다. 소련군의 진격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빨랐다.
그 이유는 소련군은 이미 독소전쟁을 통해 전력을 강화했다. 비록 독소전쟁에서 수많은 소련군인이 희생했지만 물자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최첨단 무기로 무장을 했다. 반면 일본군은 미군 등 연합군과 싸우면서 물자를 소진해 나갔다. 그러면서 관동군의 전력은 약화됐다. 군인 숫자만 많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애와 어른의 싸움에 불과했다.
일본제국도 소련의 참전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8월 9일로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상상을 하지 못했다.
소련에 무너진 일본, 결국 무조건 항복
일본이 8월 15일 무조선 항복을 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이유 중 하나가 소련의 만주 작전에 의해 관동군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은 관동군이 버텨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관동군이 무너지면서 그에 따라 일본은 당황했고, 이러다가 소련이 일본 전역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미국에 항복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항복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