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명동 황제라고 불리던 1세대 조폭 신상사(본명 신상현)가 지난 10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생전에 김두한, 이정재, 시라소니(본명 이성순)와 같은 시기에 활동을 하면서 1세대 조폭으로 불리었다.
고인은 미디어에 잘 나오지 않았지만 2003년 김두한 등 1세대 조폭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야인시대’가 흥행하면서 신상사의 존재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2009년 있었던 고인의 딸 결혼식에는 영화 ‘친구’의 실제 모델인 칠성파 두목 이강환을 비롯, 일본 야쿠자 간부 4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후 2022년 이강환의 팔순 잔치에 참석하거나, 지난해까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상사로 전역하면서
1932년 경기도 경성부 관수동(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에서 출생한 신상사는 양복점을 운영한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
숭실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일본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사에게 자주 심한 체벌을 당했고, 결국 졸업을 하지 못했다.
1949년 육군에 입대한 신상사는 3개월간 훈련을 받은 뒤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됐고,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950년 6.25 전쟁에서는 조선인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1953년 신상사는 육군 특무부대 1등상사 계급으로 전역하면서 그때부터 ‘신상사’라고 불렸다. 이후 대구에서 지역 주먹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연루될 당시 더 이상 정치에 연루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4.19 혁명과 5.16 쿠데타를 거치면서 이정재 등 다른 조폭은 연루돼서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신상사는 비켜갈 수 있었다.
1954년 서울로 돌아온 후 명동 중앙극장 옆에 자리를 잡았고, 명동 황제 이화룡과 부딪히면서 살다가 결국 범 명동파의 행동대장이 됐다.
그러면서 동대문사단과 갈등을 보였다. 1956년 황금마차 습격사건에서 쳐들어온 동대문사단 조직원을 박살냈고, 1957년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을 저지른 후 도주하는 동대문사단 조직원이 명동파 구역을 침범하자 동대문사단 조직원들을 때려눕히기도 했다. 1958년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지만 상소하는 과정에서 형량이 1년 6개월로 감형되었다.
출소한 이후
신상사가 출소를 했는데 동대문사단은 5.16 쿠데타 이후 이정재가 사형 당하면서 분열됐다. 그러면서 서울은 사실상 무주공산이 됐다. 이에 신상사는 서울을 접수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무교동파와 갈등을 보이기도 했다.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자 조직폭력배 소탕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신상사 조직원이 붙잡히자 당시 노태우를 직접 만나 구명활동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신상사가 삼청교육대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이후 판매점, 수입 자동차 대리점을 하다가 2004년 땅 주인으로부터 1억 57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혐의에 연루되면서 수사기관에 수사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