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14일 일본 국왕 히로히토 옥음방송 녹음
[역사속 오늘리뷰] 8월 14일 일본 국왕 히로히토 옥음방송 녹음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8.14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히로히토 국왕
일본 히로히토 국왕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5년 8월 14일은 일본제국 국왕 히로히토가 옥음방송 녹음을 한 날이다. 이 옥음방송이 8월 15일 정오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면서 무조건 항복 선언이 됐다.

하지만 옥음방송이 나갈 때에도 ‘내용의 모호성’ 때문에 일본 국민이나 식민지 조선 백성들 역시 항복선언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원래 임금의 목소리를 ‘옥음’이라고 부르는데 ‘옥음방송’이 일본 국왕 히로히토의 무조건 항복 선언 방송이 고유명사가 된 이유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무조건 항복 선언

8월 14일 그날의 상황은 긴박했다. 오전 8시 40분 총리대신 스즈키 칸타로와 내대신 기도 고이치가 급히 만나 오전 11시에 긴급어전회의를 여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긴급어전회의에서 히로히토는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겠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에 오후에 선언 초안을 작성하고 녹음 준비를 위해 NHK의 기술진들과 총재가 국민복 차림을 한 채 궁내청으로 들어갔다.

다만 밤 9시께까지 초안이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후 11시 30분 녹음이 종료됐고, 우여곡절 끝에 다음날인 15일 정오에 방송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도 궁성사건이라고 해서 일부 군부 세력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무조건 항복이었는가

옥음방송이 방송됐지만 ‘항복’이라는 용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국, 영국, 지나(중국), 소련 4개국의 공동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하였다’는 다소 애매모호한 문구를 사용했다. 이를 두고 과연 포츠담선언을 수용하겠다는 뜻인지 여부도 상당한 논란이 됐다.

이런 이유로 일본 자국민들도 항복을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식민지 사람들도 옥음방송이 무조건 항복 선언인지를 몰랐다.

조선땅 백성들도 그날 옥음방송이 흘러나왔지만 무조건 항복인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다만 다음날 서대문형무소가 개방하면서 광복이 온줄을 알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