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001년 9월 3일은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가결된 날이다. 이날로 DJP연합은 최종 결렬됐다.
DJP연합은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 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이 공동 여당을 목표로 갖고 결성한 연합이다. 이 연합이 성공하면서 국민의 정부가 탄생했고, 연립정부가 탄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을 맡았고, 김종필 전 총재가 책임총리를 맡으면서 임기 2년차에 의원내각제 개헌을 해서 임기 후반은 김종필 전 총재가 내각제 하 정부수반으로 국정 책임을 질 것을 공약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와 김종필 전 총재의 JP를 합쳐서 DJP연합이라고 부른다.
이대로는 정권 회득 어려워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영국으로 떠났지만 1년만에 귀국하면서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을 만들면서 정계복귀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후 정계 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에 90명의 민주당 의원 중 65명이 새정치국민회의로 대거 이동했고, 민주당은 30여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139석으로 원내 제1당 자리를 차지하고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을 얻으면서 패배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가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에 김종필 전 총재 세력과 손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김종필 전 총제 세력과의 협상 과정에 들어갔다.
자민련 창당
이 과정 속에서 자유민주연합 즉 자민련이 창당하면서 충청권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김종필 전 총재는 자신 스스로 대권을 잡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게 됐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는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기 때문에 손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기 충분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 11월 3일 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가 김종필 전 의원의 청구동 자택을 직접 찾아 DJP연합을 마무리짓게 됐다.
당시 합의 사항은 대선 후보는 김대중, 초대 국무총리는 김종필로 하고 내각제 개헌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DJP연합은 정권교체을 이뤄냈다.
불안한 동거
DJP연합은 집권 2년 이내에 의원내각제 개헌을 내걸었기 때문에 불안한 동거였다. 이런 이유로 1999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김대중 세력이 내각제 개헌에 대해 소극적 반응을 보이자 자민련이 크게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새정치국민회의는 새천년민주당으로 거듭났고,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의 후보 연합 공천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결별에 들어갔다. 여기에 한나라당이 133석의 개헌저지선을 차지하면서 내각제 개헌은 더욱 멀어지게 됐다.
이런 가운데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은 햇볕정책 등 대북 유화책에 대한 시각차를 보이는 과정 속에서 2001년 9월 3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자민련이 가담하면서 DJP 연합은 최종적으로 결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