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사도광산
[오늘 통한 과거리뷰] 사도광산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11.19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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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경덕 성심여대 교수
사진=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일본 사도광산 인근 박물관의 조선인 전시 내용에 강제노동 표현이 제외되는 등 오류가 발견됐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9일 SNS에서 사도광산 근처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을 답사했고 조선인의 가혹한 노동은 기술돼 있지만 ‘강제성’ 표현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일본은 한국과 긴밀한 협의 하에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전시한다고 유네스코에 전했지만 ‘강제노동’ 등의 단어가 없었다고 서 교수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시 내용에는 ‘반도인’이라고 표현돼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때 사용했던 단어이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반도인은 원래 둔하고 기능적 재능이 극히 낮다 등의 조신인 비하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시 니가타현 사도광산은 지난 7월 우리 정부 동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사도광산은

사도광산은 사도 금산이라고 부른다. 금이 나오는 산이라는 뜻이다. 이에 11세기부터 사금 채취가 시작됐고, 17세기 본격적인 금광개발이 시작됐다. 이에 도쿠가와 막부가 이끌었던 에도 시대에는 사도 광산에서 캐낸 금과 은으로 화폐를 주조했다. 1601년에는 1년에 금 400kg, 은 37.5톤이 산출될 정도였다. 18세기에는 범죄자나 부랑자를 강제로 광산 인력으로 투입하면서 인력 착취 논란이 불거졌다. 메이지유신 이후 1918년 민영화되면서 근대식 채광시설이 도입됐다. 그러면서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그에 따라 일본제국주의를 떠받치는 그런 광산이 되기도 했다.

강제노역의 대명사

일본제국주의는 1940년 전후로 1141명을 강제노역 시켰다. 문제는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패망 이후 일본에서는 1967년 사도 광산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2008년 광산 시설의 일부를 유형문화재로, 2012년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했다. 이어 2018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반발로 추진이 보류됐지만 2022년 2월 1일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로 선정,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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