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사제독신주의
[역사속 경제리뷰] 사제독신주의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11.19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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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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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사제독신주의는 카톨릭에서 신부는 결혼을 금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신부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신부가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재산의 상속’이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따른 카톨릭의 타락이 상당히 심해졌다. 이런 이유로 신부의 결혼을 금지시킴으로써 카톨릭의 타락을 방지하겠다는 차원에서 사제독신주의가 나왔다.

1세기 교회는

1세기 교회는 규모도 작았고, 사제와 주교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혼자가 성직을 받는 것을 금기하지 않았다. 즉, 결혼한 사람도 신부가 될 수 있었다.
동방정교회는 기혼자가 성직을 받는 것을 금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로마교회였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서유럽은 분열됐고, 그것은 이탈리아 반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신성로마제국이 들어섰는데 교황과 잦은 충돌이 일어났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봉건주의 사회로 들어갔는데 장원을 장악한 영주는 ‘왕’ ‘귀족’ ‘성직자’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 묘한 갈등 관계가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교황청이 부패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성직자는 결혼을 할 수 있었고, 영지를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그것은 부패로 이어졌다. 이에 교황들이 교회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성직자도 결혼을 할 수 있고, 재산을 상속할 수 있으면서 성직매매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서임권 분쟁

이처럼 성직자가 타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교황은 서임권이 없었고, 황제가 서임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주교를 임명하는 것이 바로 황제이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성직자에 앉히면서 자격이 되지 않은 사람들도 성직자가 될 수 있었다. 이에 주교가 되고 싶은 사람은 황제에게 잘 보여야 했고, 황제에게 잘 보이려면 결국 많은 재산을 헌납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교회가 타락을 하면서 밀라노에서 파타리노 운동이 벌어졌다. 그것은 민중 종교 개혁 운동이었다. 타락한 대주교와 성직자들을 비판하고 성직자들이 첩을 두거나 결혼하는 것을 허용하는 당시 교회 제도를 반대했다. 이들은 평신도와 성직자에 의해서 선출되고 교황에게 인준되는 방식 이외에 주교 임명에 대해서 반대를 했다. 이를 반긴 사람은 역시 교황이었다. 그러면서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서임권을 두고 치열할 갈등을 보였다. 그런 가운데 1122년 교회와 신성로마제국 간에 보름스 협약이 체결됐다. 이 협약에 따라 황제는 주교 서임권을 포기하고 교회는 주교를 자유롭게 서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제1차 라테라노 공회의 소집

그리고 그 다음해 보름스 혐약 이행을 확정하기 위해 제1차 라테라노 공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에서 성직매매와 성직자의 축첩 등의 범죄를 금지하고 징계하는 몇 가지 처벌조항을 통과했다. 구체적으로는 성직자는 아내 또는 첩을 취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또한 아내나 첩을 지닌 사람의 설교나 명령을 그 누구도 듣고 따르지 말 것을 명령한다고 돼있다. 즉, 결혼한 성직자는 더 이상 성직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더 이상 성직자 즉 신부는 결혼을 할 수 없게 됐고, 그에 따라 재산의 상속이 이뤄지지 않게 됐다. 다만 최근 들어 아동 성범죄가 일어나면서 성직자들도 결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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