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2월 23일 꽃처럼 웃어라
[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2월 23일 꽃처럼 웃어라
  • 김진혁
  • 승인 2020.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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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마음으로 과거를 되돌아보지 말라 그것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니까 빈틈없이 현재를 이용하라 그것을 할 사람은 곧 그대다

- 헨리 위즈워스 롱펠러 -

[파이낸셜리뷰] 19세기 최고의 시인 롱펠로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첫 번째 부인은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가 외롭게 숨졌고 두 번째 부인은 부엌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롱펠로의 시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임종을 앞둔 롱펠로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숱한 역경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당신의 작품에는 진한 인생의 향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롱펠로는 마당의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나무는 매우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단맛을 내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것은 늙은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기 때문입니다.“ 롱펠로에게 힘을 준 것은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환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의 역사: 작곡가 조지 프리드릭 헨델(1685-1759) 태어남.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며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또 천재적인 재능이 보여 17세 때 할레 교회당의 오르간 주자가 됨. 그는 뇌졸중과 일부 마비, 실명 등의 고난을 당해도 결단코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헨델은 대표적 걸작인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할렐루야 코러스가 합창될 때 '저편에 신의 영광이 나타났도다’를 외치며 ‘천지창조’를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1751년에 오라토리오 ‘예프타’를 작곡하고 있는 동안에 장님이 되었으며, 세상을 떠날 때 영국 국왕은 헨델이 음악에 남긴 공적을 기려서 그 유해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시켰다. 바흐와 헨델은 같은 시대의 독일 음악가이면서도 평생 동안 끝내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바흐는 헨델을 깊이 존경하였고, 헨델의 작품을 사모해서 아내와 함께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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