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형사취수, 노동력 확보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역사속 경제리뷰] 형사취수, 노동력 확보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5.12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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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사전 – 고구려 여인 우씨, 두 번 왕후가 되다 영상 캡쳐
KBS 한국사전 – 고구려 여인 우씨, 두 번 왕후가 되다 영상 캡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고구려 10대왕이 산상왕이다. 휘는 연우 혹은 이이모이다. 삼국사기에는 그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산상왕에는 여러 형제가 있었는데 둘째 형인 고국천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왕후 우씨는 셋째인 ‘발기’(發岐)를 먼저 찾아갔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왕후 우씨는 발기에게 “왕의 아들이 없으니 마땅히 당신이 왕의 뒤를 이어야지요”라고 말했다.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 산상왕

그런데 발기는 고국천왕의 승하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고국천왕이 자신을 떠보려고 하는 줄 알고 거절했다고 한다. 왕후 우씨는 넷째인 연우의 집에 찾아갔는데 연우가 직접 고기를 썰어 정중히 대접하려고 하다가 그만 손을 다치게 되자 왕후 우씨가 치마를 찢어서 직접 치료를 해줬다고 한다. 또한 그날 새벽까지 연우의 집에 있다가 새벽이 돼서야 궁궐로 돌아갔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왕후 우씨는 발기 대신 연우를 왕에 올리게 되는데 그가 산상왕이다. 이에 발기가 불만을 품었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실패를 하면서 자살을 했다. 그리고 왕후 우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산상왕이 형수인 왕후 우씨가 찾아오자 고기를 썰어 대접하려다가 손을 다치자 왕후 우씨가 치마를 찢어 상처를 치료해줬다고 한다./KBS 한국사전 – 고구려 여인 우씨, 두 번 왕후가 되다 영상 캡쳐
산상왕이 형수인 왕후 우씨가 찾아오자 고기를 썰어 대접하려다가 손을 다치자 왕후 우씨가 치마를 찢어 상처를 치료해줬다고 한다./KBS 한국사전 – 고구려 여인 우씨, 두 번 왕후가 되다 영상 캡쳐

형수취수는

이야기를 들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 즉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게 됐으니 무슨 막장이냐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형사취수 풍습은 거대국가에서 흔하게 있었던 풍습이다. 형사취수는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경우가 있었고, 결혼 없이 형수와 관계를 맺고 출산을 해서 형의 대를 잇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몽골족이나 만주족 등 북방민족에 있었고, 고대 이스라엘 유대인에게도 형사취수제가 있었는데 ‘레비라트’라고 불렀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준 법에는 ‘형이 자녀가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자기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칠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 때에 그들이 다시 살아나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는 내용이 있다. 더 업그레이드 버전은 아버지의 후처들을 아버지가 죽은 후 모두 아들의 아내로 맞이하는 제도도 있었다.
KBS 한국사전 – 고구려 여인 우씨, 두 번 왕후가 되다 영상 캡쳐
KBS 한국사전 – 고구려 여인 우씨, 두 번 왕후가 되다 영상 캡쳐

노동력 확보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고대에는 남성이 죽는 경우가 흔했다. 즉, 남성은 수명대로 살지를 못했는데 그 이유는 사냥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일찍 죽었다. 따라서 부인은 남편을 잃는 것이 다반사였다. 홀로 남은 여인을 보호해야 하는데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해주게 됐고, 그것이 형사취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느 ‘노동력’ 확보이다. 농사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 고대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농기구나 농사 재배법 등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노동력이 많이 확보되면 될수록 농업생산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고대에는 모계사회였기 때문에 남편이 죽으면 얼마든지 재혼을 할 수 있었다. 재혼을 하게 된다는 것은 한 가족에서 떨어져 나가서 다른 가족으로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노동력의 확보를 의미한다. 또한 형수의 자녀 즉 조카들도 다른 가족의 노동력이 되는 셈이다. 노동력이 빠져 나가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면 형의 자녀 즉 조카들을 자신의 자녀로 만들어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여자를 재혼하지 못하고 집안의 귀신으로 만드는 방법인데 주로 조선시대 때 했던 방법이다. 즉, 정절을 지키는 것이 큰 미덕인양 만든 것은 바로 집안의 노동력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자가 줄어도 출산을 할 수 있는 여성만 있으면 노동력 확보는 되기 때문에 고대에는 형사취수 방법을 사용했다. 다만 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경우는 없었다. 현행 일본 민법에는 형사취수가 가능하다. 이는 세계대전 패전 후 수많은 아이 있는 과부가 생겨나면서 시동생들이 자신의 집안과 조카를 위해 형수와 결혼을 하면서 민법에도 규정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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