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한보그룹
[기업Hi스토리] 한보그룹
  • 전완수 기자
  • 승인 2022.05.30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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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이나 정치인이 재판 혹은 청문회 출석 때 휠체어 타고 마스크 쓰는 것이 유행했는데 원조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다./사진=연합뉴스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재판 혹은 청문회 출석 때 휠체어 타고 마스크 쓰는 것이 유행했는데 원조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다./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전완수 기자] 한보그룹은 1974년부터 1997년까지 건설·제조업 기업집단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한축을 담당했다. 1996년까지 재계 서열 18위로 대기업이었지만 1997년 1월 23일 부도가 나면서 공중분해됐다. 한보그룹의 부도는 그해 외환위기를 도래하게 만들었고, ‘김현철 스캔들’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정태수 회장이 ‘사업을 하면 잘된다’는 점쟁이 말을 듣고 창업했으며 ‘쇳가루를 만져야 한다’는 점쟁이 말에 제철소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부도가 난 것이다.
한보그룹의 드라마틱한 흥망성쇠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한보사태를 방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무공무원이었던 정태수

1960년대까지 정태수 회장은 세무공무원이었다. 그런데 “사업을 하라”는 역술인의 말을 듣고 세무공무원을 그만 두고 1974년 ‘한보상사’를 창업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 폐광을 인수했는데 미국에서 몰리브데넘의 생산이 중단되자 떼돈을 벌었고, 1975년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에 영화아파트 172가구를 지으면서 주택건설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규제조치 등이 걸리면서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고, 이에 부도 직전까지 갔다. 문제는 2차 오일쇼크가 오면서 화페가치가 크게 하락했고, 부동산이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으면서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분양 20일만에 완판이 됐다. 이로서 거금을 손에 쥘 수 있게 됐고, 재벌로 성장하게 됐다.
한보그룹은 다른 대기업과 달리 은마아파트 상가 3층을 본사 건물로 사용했다./사진=연합뉴스
한보그룹은 다른 대기업과 달리 은마아파트 상가 3층을 본사 건물로 사용했다./사진=연합뉴스

철강사업에 뛰어들어

1981년 그룹총괄비서실을 신설해서 대기업으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그리고 1982년 한보탄좌개발을 세워 탄광사업에 진출했고, 1985년 (주)금호 철강사업부를 인수했다. 당시에는 사업이 잘됐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력사업은 ‘건설’이었고, 이를 위해 로비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1991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이 일어나면서 공중분해 위기에 몰렸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노태우 정권이 승리하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주력이었던 주택부문에서 손을 떼야 했고, 정태수 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993년 정태수 회장이 총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상아제약을 인수했고, 철강사업에 집중했다. 이에 1995년 부실 건설업체 유원건설을 인수했다. 하지만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정태수 회장이 구속되고 3남 정보근 부회장이 회장으로 등극하면서 2세 경영체제로 전환됐다. 그러면서 제철소 건설에 들어갔다. 문제는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 차입, 어음발행, 매각 등으로 돈을 확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1996년 말에 결국 자금이 바닥났다. 이후 1997년 1월 6일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450억 원을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려 했지만, 다음 날 주식시장 폭락 등의 악재가 있었다. 1월 9일 어음 1천200억 원이 들어와 위기를 맞았으나 은행권의 긴급 지원으로 위기를 넘겼다. 1월 10일에는 자사 보유 3천100억 원짜리 부동산을 내놓았으나 쉽사리 팔리지 않았고, 전환사채 350억 원을 발행하려 했으나 매각에 실패했다. 1월 14일 임원진을 전면 교체하며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1월 17일 560억 원의 어음을 다시 은행권 추가지원으로 넘겼다. 이 와중에 한보철강이 짓던 당진제철소의 냉연/열연공장이 준공되며 잠시나마 상한가에 오르기도 했다. 1월 20일 3,000억 원 추가 지원을 은행권에 요청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1997년 1월 23일 50억 원의 어음이 들어왔고, 은행권의 추가지원 난색 등으로 어음 결제를 못하자, 주식포기각서를 내며 도산했다. 이때 한보철강이 졌던 빚만 5조 원이었다. 한보가 무너지자 비슷하게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던 많은 재벌그룹이 연쇄 부도를 맞이했고, 1997년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경제 위기가 도래했다.
1997년  한보사태로 인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정태수 회장은 자신은 주인, 계열사 사장은 머슴으로 표현했다./사진=연합뉴스
1997년 한보사태로 인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정태수 회장은 자신은 주인, 계열사 사장은 머슴으로 표현했다./사진=연합뉴스

휠체어 출석 원조

그해 5월 공금 횡령 및 뇌물 수수 혐의인 이른바 한보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이때부터 한보 리스트가 회자됐고, 청문회 과정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 차남 김현철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현철 국정농단 사건으로 번졌다. 당시 정태수 회장은 청문회에서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계열사 사장)이 뭘 압니까”라는 발언을 하면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청문회나 재판 과정에서 휠체어를 타고 마스크를 쓰고 출석을 했다. 이후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재판에 출석하거나 청문회에 출석을 할 때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를 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정태수 회장이 원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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