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삼천리자전거
[기업Hi스토리] 삼천리자전거
  • 전완수 기자
  • 승인 2022.12.28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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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자전거 홈페이지
[파이낸셜리뷰=전완수 기자] 삼천리자전거는 우리나라 자전거 회사로 역사상 가장 길고 인지도가 높은 자전거 회사이다. 원래 삼천리자전거는 기아차와 함께 출발을 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대표하는 자전거 브랜드가 됐다.

학산 김철호로부터 자전거 시작

우리나라 최초 브랜드 삼천리가 나오게 된 것은 학산 김철호로부터이다. 원래 일본 오사카에서 부두 하역장과 공사장 등에서 막노동으로 생활을 꾸리다가 일본인 십장(작업반장)의 추천으로 니시나리구 츠모리쵸에 있던 볼트/너트를 만들던 오사카철공소의 견습공으로 취직하면서 자전거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삼화제작에서 일을 하다가 일본 패망이 짙어지면서 우리나라로 귀국해서 서울 영등포에서 경성정공을 설립한 후 자전거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2년 회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하고, 우리나라 최초 자전거인 3000리호를 출시했다. 이후 1953년에는 한국자전거공업협동조합의 초대 이사장으로도 선출됐다. 이와 더불어 기아는 자동차 개발에도 착수를 했다. 그러면서 1979년 자전거사업 확대를 위해 자전거사업부를 분사시켜 ‘삼천리자공’을 설립했다. 1981년 업계 최초로 공업진흥청으로부터 품질관리 1등급 업체로 지정됐으며, 1982년 ‘삼천리자전거공업(주)’로 사명을 변경했다. 또한 1985년 기아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독립하면서 이때부터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됐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및 1988 서울올림픽 공식 스폰서로 지정받으면서 1987년 국내 최초로 년간 생산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1991년부터 빨간 네모에 ‘3000’이라고 쓰인 새 로고로 바꾸며 자전거 브랜드 ‘레스포’를 런칭했다.

한때 위축됐었지만

삼천리자전거는 2001년 추욱 옥천군으로 생산을 옮기고 2004년 인라인 사업까지 나섰지만 치솟은 물가, 인건비 및 중국산 저렴한 자전거 등으로 인해 옥천공장이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2009년 말 경기도 의왕시에 새 공장을 준공했으며, 같은 해에는 앙드레 김 디자인을 적용하고 경기도 고양시의 공용임대자전거 ‘피프틴’ 사업자 에코바이크가 세워질 때 출자하기도 했다. 2010년 업계 최초로 국산 전기자전거를 생산한 뒤, 2012년 MTB 브랜드 ‘칼라스’, 2013년 유아용 자전거 ‘샘트라이크’를 각각 출시하는 등 2000년대 중~후반에 걸쳐 그동안 거쳤던 침체기를 완연하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코로나19 겪으면서

삼천리자전거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면서 대중교통수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매출이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국 자전거 매장에 자전거가 없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이에 삼천리자전거의 전용 직영 온라인몰 삼바몰의 거의 전 모델이 매진되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다. 평년 대비 60%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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