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한일합섬
[기업Hi스토리] 한일합섬
  • 전완수 기자
  • 승인 2023.01.31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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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전완수 기자] 검찰이 한일합섬 창업주의 손자를 마약 혐의로 구속하면서 한일합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28일 해외에 체류하다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한일합섬 창업자 故 김한수 회장의 손자 김모씨(43)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2021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고려제강 창업주의 손자인 홍모(39)씨에게 두 차례 대마를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상징

한일합섬은 김한수 회장이 1954년 ‘한일합성섬유공업’을 설립한 것에서 출발했다. 1967년 경상남도 마산시 양덕동에 아크릴공장을 세우고 본사를 이전했다. 그리고 1969년 김해 합섬방직공장, 1971년 구로 염색공장, 1973년 양구 스웨터공장을 각각 세웠다. 1974년에는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1975년에 대구와 수원에도 공장을 세웠다. 한일합섬은 박정희 정권 시절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상징으로 부각될 정도로 대규모 섬유업체였다. 그리고 마산시(현 창원시)에서는 향토기업의 대명사로 지역 경제를 이끌었었다. 이에 1973년 국내 최초로 수출 1억불을 달성했고, 1976년에는 사원수가 2만 7천여명으로 마산시를 사실상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마산이 부자도시로 7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무차별한 인수전 뛰어들어

이에 1973년 부국증권과 동서석유화학을 인수했고, 1982년 김한수 회장이 사망하자 2세 김중원으로 이어지면서 1986년 국제상사, 남주개발, 신남개발, 원효개발 등 구 국제그룹 주요 계열사들을 인수했다. 1987년에는 비료생산 공기업 진해화학까지 인수해고, 1993년 중국 허베이성에 첫 해외 현지법인을 세우기도 했다. 그 외에도 레쥬메, 앙띰, 발도, 윈디클럽 등의 패션의류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울러 1973년 여자 실업배구단을 창단했고, 1983년 김중원 회장이 대한배구협회장을 맡았다. 1980년대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결국 실패했다.

사양산업으로...하지만

하지만 섬유산업이라는 것이 결국 저임금 노동력을 강도 높게 투입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임금 인상은 한일합섬을 더욱 위기에 몰아넣게 만들었다. 이에 1996년 수원공장이 문을 닫았다. 본사인 마산공장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해외로 설비를 이전하면서 폐쇄 수순을 밟게 된다. 결국 1997년 IMF가 몰아닥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다만 한일합섬의 몰락은 마산시의 몰락으로도 이어졌다. 한때 전국 7위를 차지했던 마산시의 영광은 옛말이 됐다. 그로 인해 35만까지 육박했던 마산시 인구가 15만명으로 급전직하했다. 결국 창원시 등과 통합하면서 창원시가 됐다. 한일합섬은 2007년 동양그룹으로 인수된 후 지주회사격인 동양메이저로 흡수합병되어 한일합섬사업부라는 ‘회사 안의 회사’로서 사업을 이어나갔다. 동양메이저는 이후 (주)동양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6년 동양그룹이 해체된 후 유진그룹이 (주)동양을 인수하면서 한일합섬사업부 역시 유진그룹으로 넘어갔고, 2018년 유진한일합섬으로 재분사됐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외피에 사용되는 부직포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그에 따라 매출도 늘어났다. 특히 2022년 국내 최초로 친환경소재를 원료로 한 PLA 스판본드 부직포를 선보이고 본격적인 생산판매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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