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깡패 중심으로 영화 산업 성장
이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조치는 한국 영화 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가져왔다. 1955년 14편, 1956년 30편, 1957년 37편이었던 제작편수가 1958년 83편으로 늘었고, 1959년에는 111편을 제작했다. 이런 영화 제작 산업에 깡패가 개입된 경우가 있었다. 임화수나 이화룡 등이다. 깡패가 개입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일제강점기 때부터 극장을 깡패가 관리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극장을 깡패가 관리를 하는 경우가 있으면서 서울 지역 깡패와 연계되면서 영화 배급이 수월하게 이뤄졌다. 즉, 충무로 지역의 극장을 운영하던 임화수나 이화룡 등이 영화 제작에 손을 대면서 영화 제작과 영화 배급까지 겸할 수 있기 때문에 강패가 영화제작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었다.5.16 쿠데타 이후
5.16 쿠데타 이후 임화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 이후에도 영화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됐고, 충무로 일대에는 극장들이 속속 들어서게 됐다.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극장, 서울극장, 국도극장,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등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이러면서 현상소, 기획사, 인쇄소 등이 함께 번성을 하게 됐다. 또한 영화인들이 쓰는 소품을 운반하는 오토바이 가게들이 들어서게 됐고, 배우 지망생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기 위한 사진관이 들어섰으며, 영화 포스터, 홍보물 제작을 위한 출력실과 인쇄소가 충무로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기업 자본이 투입되면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나면서 충무로 영화산업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