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에서 발생한 문명
문제는 해당 지역이 습지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관개사업을 게을리하면 두 강의 강물이 넘쳐 흘러 모든 도시를 삼켜버릴 정도였다. 이에 수로와 운하를 끊임없이 관리하고 개선하는 관개사업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다보니 구심점이 필요했고, 그 구심점에 ‘신’을 앞세워서 도시의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했다. 이에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소원을 비는 일을 주관할 사제가 필요하고, 도시를 관리하는 사람인 즉 왕이 필요하면서 도시국가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시국가는 신권정치 형태로 지도자는 신의 대표자로 여겨 모든 권한을 가졌다.잉여생산물 관리하는 장소 필요
수메르인이 점차 물을 다룰 줄 알면서 농사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더 많은 곡물이 생산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웃마을들과 교역하게 됐다. 이에 장사하는 사람, 청동으로 무기 만드는 사람, 전쟁을 담당하는 전사 등 직업이 분화됐다. 이에 첫번째 국가 우르가 생겨났다. 앞서 언급한대로 수메르 도시국가들은 신권국가이기 때문에 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장소가 필요했고, 이에 지구라트를 건설했다. 다만 최근 일부 학자들은 지구라트가 단순히 제사용도로 만들어진 신전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학설을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식량 저장 창고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두 강물의 범람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도시가 물에 잠기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잉여농산물들이 물에 젖어 썩어나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이에 신전에 갖다 바치고 그에 따른 증명서를 발급 받는 형식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부가 잉여농산물을 만들어서 지구라트에 보관하고, 소위 보관증을 받게 되고, 식량이 필요할 때 보관증을 보여줘서 그에 걸맞는 식량을 받아가는 형식이 됐었고, 홍수로 인해 범람하면 지구라트에 보관된 식량은 안전하게 보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지구라트라는 높은 언덕을 만들고 그 언덕 위에 신전을 만들어서 식량을 저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지구라트에는 수많은 창문이 있는데 그것은 습기를 빼는 용도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지구라트에 오가는 물품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했다. 이에 진흙으로 넓적한 판을 만들어 갈대나 뾰족한 나뭇가지를 이용해 진흙판에 꾹꾹 눌러가면서 글자를 새겼다. 처음에는 ‘보리 1개’ 등의 물건 형상을 본뜬 형태였겠지만 점차 단순한 기호 형태로 자리잡게 되면서 쐐기문자 즉 설형문자가 나타나게 됐다. 쐐기문자는 점차 복잡한 내용까지 기록하게 되면서 기록ㅇ르 담당하는 서기관 들의 역할이 커지게 됐다. 이들은 수호가물의 양과 저장량, 교역량에 관한 기록, 법률, 일상의 기록 등 다양한 기록을 쐐기문자 형태로 만들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