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엽전 들고 가야 하나
개나리 봇짐에 그 엽전을 넣어 간다면 그 무게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1903년 조선을 찾은 러시아 작가 Y 시에로셰프스키의 '꼬레아 1903년 가을'이라는 기록에 따르면 이 러시아 작가가 부산을 출발해서 태백산맥을 따라 강릉으로 거쳐 서울로 이동하는 여정을 하려고 했고, 이에 엽전을 구했는데 그 무게가 25kg이라고 했다. 그 무거운 엽전을 들고 가야 한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고 러시아 작가는 생각했다. 하지만 통역사는 왜 엽전을 들고 다녀야 하냐면서 핀잔을 줬다. 그것은 러시아 작가가 우리나라 주막의 신용결제 시스템을 몰랐기 때문이다. 해당 기록에 의하면 통역사가 러시아 작가에게 그 모든 돈을 처음 묵는 주막 주모에게 전달해주고 영수증과 교환하기를 권했다. 첫번째로 머무는 주막에서 여행 경비를 모두 맡기고 영수증을 교환하면 이후 여행길에 거치는 다른 주막에서 영수증을 돈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주막 주인들은 여행객에게 받아야 할 숙박비나 식비, 기타 물품비 등을 영수증에 표시해 두면 여행객이 마지막에 머무는 주막의 주모는 그 영수증을 받고 남은 돈을 계산해 여행객에게 돌려줬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주막의 운영을 현대처럼 협동조합과 같은 것을 설립하고 이른바 체크카드와 같은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놀라운 주막 네트워크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17~18세기를 거치면서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인구의 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1703년 주막이 처음 등장했고, 처음에는 주막 이용자들이 각자 준비한 식량을 직접 해먹었었다. 하지만 인구 이동이 점차 증가하면서 주막의 숫자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조선말기에는 주막 숫자가 12만여개가 됐다고 한다. 이에 10리마다 주막이 한개씩 있었다고 한다. 현재 전세계 스타벅스 매장이 대략 3만여개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이고, 편의점보다 많은 것이 주막이었다. 그들은 점차 네트워크로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신용결제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다시 당신은 김서방이라고 하자. 그리고 부산에서 한양으로 여행을 한다고 하자. 그 무거운 엽전을 들고 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 영수증만 있으면 10리 마다 한 개씩 있는 주막에 들러서 뜨끈한 국밥과 막걸리 한잔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온돌 방안에서 후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종잇조각 하나로 충분하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