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도입
IMF 구제금융 신청으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물결처럼 들어왔다. 물론 문민정부 말기에 ‘글로벌화’를 외치면서 신자유주의를 따르자고 했지만 아직도 신자유주의를 도입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 물결이 강하게 한국으로 밀려들어온 것이다. 누구도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한경쟁의 숲으로 들어간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망했지만 살아남은 기업들은 더욱 강해졌다. 그것은 살아남을 기업만 살린 정부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표적인 기업이 대우그룹·한보그룹 등이다. 오죽하면 외환위기를 함께 겪었던 태국의 한 관료가 IMF를 향해 “잘못을 했으면 계도를 할 것이지, 왜 줃고록 매를 때리는가”라고 항의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구조조정을 해냈다.살인적인 고금리
대표적인 것이 시중 은행 금리를 연 29.5%까지 올렸다. 이유는 고금리로 자본유입을 늘린다는 것인데 은행 돈을 빌렸던 수많은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확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초고금리는 기업의 부채상환부담을 가중시키고 연쇄부도를 발생시켰다. 이는 대량실업과 경기후퇴로 이어졌다. 물론 기업이 튼실했다면 고금리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대량실업과 경기후퇴는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만약에’라는 것이다. 고금리는 대량실업으로 쫓겨난 은퇴자들에게도 고통을 가했다. 명예퇴직 후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데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고금리는 결국 일본 돈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저축은행이 탄생하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사채 시장을 뒤흔들었다.평생 직장 사라졌다
IMF 이전에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있었다. 아주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은 처음 직장이 정해지면 그 직장에서 평생 다녔다. 하지만 IMF 이후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 해고가 자유로워지고, 직장의 이동 역시 자유로워졌다. 그것은 일터의 변화를 초래했다. 평생 직장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한 직장에 충성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투잡·쓰리잡 개념이 사라졌고, 인생 2막 등등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파업은 더욱 거세졌다. 아무래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 등을 겪으면서 노동환경 등으로 인해 노조의 입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정권교체 서막 올려
IMF는 정권교체의 서막을 올렸다. 물론 김영삼 대통령도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보수정권에 들어가서 대통령이 된 케이스다. 이런 이유로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진보 진영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꿈이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이뤄졌다. 그 밑바탕은 IMF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엉망이 되면서 보수 정권에게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유권자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정치사는 보수 정권에서 진보 정권으로, 진보 정권에서 보수 정권으로 번갈아 교체가 되는 역사를 안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