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11기 중심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는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이다. 육사 11기는 1951년 한국전쟁 중 경상남도 진해군에 육사가 개교되면서 입학했다. 당시 228명 생도 중 경남 41명, 경북 29명으로 대다수가 경상도 출신이다. 이들은 지역별로 모이기 시작했는데 같은 경북출신인 전두환, 노태우 등이 몰려다녔다. 여기에 경남 출신도 가세를 하면서 하나회의 윤곽이 점차 잡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5.16 군사반란이 일어나자 전두환은 육사에 나타나 생도들을 이끌고 지지 시위를 하자고 제안했다. 육사 교장이나 교수 등은 반대했지만 쿠데타를 반대하던 교수들이 끌려 나가면서 상황이 달라졌고, 결국 육사 18~21기 재학생들의 지지시위가 있었고, 이것이 5.16 군사반란을 성공시킨 요인이 됐다. 이로써 전두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눈에 들게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의 경호를 위해 충성스런 젊은 장교들을 원했는데 박종규 소령이 육사 11기생 10명을 차출했다. 여기에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경호실 근무를 하면서 권력의 핵심이 됐고, 훗날 박종규, 차지철, 윤필용이 하나회 최대 후원자가 됐다.군부세력 견제로 하나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군부 세력에 의한 쿠데타였다. 이를 막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부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육사 11기생의 압도적 지지가 필요했다. 육사 11기생 역시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 필요했다. 서로 상생 관계가 되면서 하나회는 그렇게 박정희 정권의 뿌리가 됐다. 다만 여전히 육사 11기가 군부를 완전히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윤필용 사건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육사 11기 즉 하나회가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 계기는 12.12 군사반란을 계기로 이뤄졌다. 10.26 사태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이 궁정동 안가에 있었다는 이유로 수사를 해야 한다면서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해서 강제로 옷을 벗기게 했다. 그러면서 군부를 장악하게 됐고, 이것이 5.17 군사반란을 통해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전두환 정권이 탄생하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