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셔우드 숲 그리고 로빈 후드
[역사속 경제리뷰] 셔우드 숲 그리고 로빈 후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1.09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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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빈 후드 한 장면.
영화 로빈 후드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로빈 후드 전설은 이제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상당히 알려진 내용이다. 잉글랜드 존왕에 맞선 의적이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 전설을 만들어 내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셔우드 숲이라는 공간에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영국에서 숲은 서민들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봉건시대 때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숲이나 들 등 임야 토지는 모두 공유지 성격이 강했다. 이는 흉년 시 먹을 야생식물을 채취하거나 가축의 방목이나 벌목 등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원이 해체되면서 공유지는 결국 지주의 사유지가 되면서 울타리가 쳐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인클로저 운동’이다.
영화 로빈 후드 한 장면.
영화 로빈 후드 한 장면.

인클로저 운동의 시초는 윌리엄 1세???

1066년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가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윌리엄 1세를 따라온 노르만족 기사들이 잉글랜드 영지의 새로운 지배계층이 되면서 앵글로색슨족과 대립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땅이 노르만 왕조의 땅으로 부여됐고, 그러면서 ‘산림법’이 제정됐다. 산림법은 해당 지역의 영주나 소작농들이 소유하고 있던 자원 관리 및 배분권을 왕실이 독점하는 것이다. 이를 다시 노르만족 세력에게 재분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윌리엄 1세는 거대한 땅을 산림법으로 묶어 버렸다. 그리고 해당 지역에서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사람의 눈알을 뽑아버리겠다는 등 사냥 금지를 시켰다. 산림법이 제정되면서 노르만 왕조의 경제권은 갖게 된 반면 앵글로색슨족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자신의 땅을 빼앗기게 된 상태가 됐다. 앵글로색슨족이 셔우드 숲 등 왕실 관련 숲에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세금을 내야 했다. 그렇게 해서 헨리2세 당시 1만 2천파운드의 수입이 들어왔다. 왕실 총수입이 2만 파운드였다는 점에서 왕실 총수입의 대다수를 산림법에 의해 거둬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왕도 이런 수법으로 재정을 확충해 나갔다. 하지만 존왕은 프랑스령 잉글랜드 땅을 계속해서 잃어버렸는데 그때마다 산림법을 통해 막대한 전쟁비용을 충당했다. 그렇지만 존왕은 전쟁을 할 때마다 패배를 했고, 그때마다 산림법을 강화시켰다. 이런 이유로 귀족들도 더 이상 존왕의 전횡을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이에 귀족들이 반발하면서 마그나 카르타를 제정하게 됐다. 왕이 자신의 마음대로 세금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핵심 내용이다.
영화 로빈 후드 한 장면.
영화 로빈 후드 한 장면.

로빈 후드가 존왕 배경인 이유

이같은 이유 때문에 로빈 후드 전설은 존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후 상공업이 발달을 하면서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지주들이 점차 공유 산림 지역에 대해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났다. 인클로저 운동은 농촌지역의 붕괴로 이어지게 됐고, 농촌에서 땅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점차 도시로 몰려들게 됐고, 그 도시 유랑민들이 훗날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로 전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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