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산림녹화산업 그리고 석탄보일러
[역사속 경제리뷰] 산림녹화산업 그리고 석탄보일러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3.09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우리나라는 ‘온돌’ 시스템으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전국토가 민둥산이었다. 민둥산이 된 원인은 바로 17세기 중후반부터 불어닥친 ‘소빙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온돌이 일반 서민들에게도 보급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초창기 궁궐에는 ‘굴뚝’이라는 것이 없지만 대원군 시절 중건한 경복궁에는 굴뚝이 보였다는 점에서 온돌이 17세기 후반부터 전국토에 보급이 됐다. 온돌이 보급됐다는 것은 결국 나무 땔감을 구해서 불을 지피는 방식이 됐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 전국토는 황폐화가 됐다.

17세기 중후반부터 인구 폭증

17세기 중후반부터 인구가 폭증했다. 인구가 폭증한 이유는 모내기 즉 이양법이 보급되면서 쌀 생산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상업화와 공업화가 이뤄지면서 시장경제가 활발해졌다. 시장경제가 활발해졌다는 것은 땔감 장수가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뭇꾼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땔감장수가 시장에서 땔깜을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점차 분업화의 길을 가게 됐다. 이는 전국토를 황폐화시키는 지름길이었다. 물론 역대 왕조에서도 계속해서 나무 심기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온돌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구한말 서양인들이 우리 조선땅을 밟았을 때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나무가 없다’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역시 나무가 너무 없기 때문에 나무 심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1970년대 들어서서 성공한 이유는

이는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심기를 위해 식목일까지 지정했지만 전국토의 민둥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온돌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변화를 가지게 됐는데 그것은 석탄보일러의 보급이다. 당시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은 나무를 심는 예산을 우리나라에 지원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나무를 심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석탄보일러를 보급하는데 사용했다. 석탄보일러를 보급하는데 사용한 이유은 ‘수요’가 없어야 나무심기도 성공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그동안 나무심기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온돌 때문인데 그것을 석탄보일러로 바꾸자는 것이다. 결국 석탄보일러의 보급이 점차 이뤄지면서 초창기 아파트는 석탄보일러를 사용하는 아파트였다. 석탄보일러의 보급은 주효했다. 석탄보일러 보급으로 인해 더 이상 땔감을 소비할 일이 사라지게 되면서 나무심기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공무원들에게 나무심기를 할당하면서 그에 따라 나무심기가 촘촘하게 이뤄지면서 점차 산림이 푸르게 변화를 해갔다.

화전민 사라진 이유

산림녹화사업은 화전민(火田民)을 사라지게 했다. 화전민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지정이었다.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 화전민은 쫓겨나야 했다. 이에 화전민을 쫓아내기 위해서 강제철거 등 탄압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 박흥숙 사건은 화전민을 다루는 방법의 변화를 꾀하게 만들었다. 이에 화전민 자녀를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보내는가 하면, 집을 지어주고, 양봉 등 임어교육 등 직업교육을 시켜줬다. 아울러 정착비용 등을 주기도 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