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타난 이강석
그해 8월 30일 경주에서 갑자기 자신을 이강석이라고 하는 청년이 나타났다. 이 청년은 경주경찰서에 들어와 아버지(이승만)의 밀명으로 풍수해 피해 상황과 공무원들의 기강을 알아보려 왔다고 했다. 당시 경주경찰서장은 물론 경주시장까지 이 청년 앞에서 “귀하신 몸이 여기까지 왕림하시니 광영이옵니다”는 등 극존칭을 사용했고,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경주경찰서장은 경호차까지 내어서 경주 일대를 둘러보게 했다. 해당 청년은 다음날 경주 옆 도시인 영천에 갔고, 당시 영주경찰서장 등 해당 지역 유지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또한 이 청년은 ‘수재의연금’을 내라고 하자 유지들은 상납을 했다. 이 청년은 드디어 사흘째 되던 날 경북도청 소재지인 대구에 도착했다. 경북도청 사찰과장이 직접 나와서 안내했으며, 경북도지사 관사에 머물게 했다. 하지만 경북도지사는 진짜 이강석과 안명이 있었기 때문에 해당 청년을 의심했고, 자신의 아들이 이강석과 서울대 동창이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신분을 확인하게 했다. 경북도지사 아들이 이강석이 아니라고 확인하면서 도지사 관사 뒤뜰에서 청년은 체포됐고, 가짜 이강석 사건은 3일 만에 종료됐다. 가짜 이강석의 진짜 이름은 강성병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가출해서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자신의 얼굴이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이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덮고 가려고 했지만
당초 경찰은 해당 사건을 언론에 공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강석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이면서 당시 국회의장인 이기붕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위신이 걸린 문제였다. 하지만 당시 매일신문 기자가 해당 사실을 알아낸 후 보도를 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강씨는 재판 과정에서 “내가 시국적 악질범이면 나에게 아첨한 서장, 군수 등은 시국적 간신도배”라면서 자신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대통령의 양아들이고, 국회의장의 친아들이었다는 이유로 당시 엄청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요즘말로 ‘아빠 찬스’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진짜 이강석 역시 파출소에서 헌병 장교의 뺨을 때린 바도 있다. 결국 진짜 이강석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진짜 가족들인 이기붕 가족들을 살해한 후 본인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