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6월 26일 김구 피살
[역사속 오늘리뷰] 6월 26일 김구 피살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6.26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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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육군 장교 안두희에 의해 피살 당한 날이다. 암살 배후에는 이승만, 김창룡, 장택상, 미국 등이 나왔지만 암살범은 안두희는 확실했다.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버스기사의 둔기에 피살 당했다. 그때 사용한 둔기에는 ‘정의봉’이라는 글자가 새겨있다.

이승만 때 백범일지 금서로

이날 오후 12시 30분께 사망한 후 28일 오후 1시까지 약 75만명이 종로구 평동의 빈소인 경교장을 다녀갔고, 유해는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장례는 10일장으로 조문객수는 2백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하게 제기돼왔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이승만 정권 당시 금서로 지정했다. 학계에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대신 자신의 업적 즉 외교독립론을 강조하라고 지시하면서 교육과정에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이 기재됐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오히려 국민들 사이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김구 선생을 죽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게 됐다.

5.16 쿠데타 이후

김구 선생이 복권된 것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군부가 실권을 잡으면서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에 대해 극찬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이기 때문에 전임 정부를 배격하기 위해서 결국 정치적 라이벌인 김구 선생을 내세워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제국주의 만주군관학교 출신인데다 과거 남로당 전력도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면서 우파 성향이 강한 김구 선생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친일 색채를 빼는 동시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확실히 하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다.

효창운동장 논란도

이승만 정권이 김구 선생의 업적을 깎아 내리기 위한 방안으로 효창공원에 효창운동장을 건립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왕조 22대 임금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묘가 있는 자리라 하여 '효창원(孝昌園)'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하지만 해방 이후인 매헌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 구파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했다. 또한 효창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그리고 임시정부 요인 출신이었던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유해가 안장되면서 독립운동가들의 묘소가 됐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 당시 1960년 AFC 아시안컵 개최를 위해 효창운동장 건립을 추진했는데 당시 국회의원 김두한이 격렬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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