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1980년대 저유가 시대
[역사속 경제리뷰] 1980년대 저유가 시대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9.11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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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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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80년대 저유가 시대가 펼쳐지면서 우리나라는 3저 호황의 시대로 들어갔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성장은 눈부시게 일어나면서 전세계가 주목받았다. 또한 저유가 시대는 소련의 경제 붕괴가 유발되면서 그에 따라 소련의 붕괴로도 이어졌다. 그만큼 1980년대 저유가 시대는 전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저유가 시대로 접어든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원인 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 등도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1979년 이란이 이란혁명을 통해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제사회에서 유가는 요동을 쳤다. 그것이 바로 2차 석유파동이다. 이란이 혁명으로 인한 파업으로 하루 6백만 배럴 분량이던 석유 생산량이 200만 배럴까지 축소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여기에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원유공급 중단으로 석유시장이 요동쳤다. 그러나 OPEC 소속 다른 국가들이 증산을 했고, 북해, 멕시코, 알래스카의 석유 개발이 급진전되면서 비OPEC의 석유 생산량이 OPEC의 석유 생산량을 앞지름게 됐다. 여기에 이란과 이라크 모두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재정난에 시달렸고, 석유를 헐값에 팔면서 유가가 오히려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위기 느낀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가 위기를 느끼면서 감산 노력에 들어갔다. 1980년 하루 1천만 배럴을 생산했지만 1985년 320만 배럴까지 감축했다. 그러면서 다른 OPEC 회원국들에게 감산을 요청했다. 하지만 다른 산유국들은 한 번 시장 점유율을 상실하면 미래에 점유율 확보 보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사우디의 요청을 듣지 않았다. 사우디는 1985년 강하게 비방했지만 다른 산유국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사우디 역시 시장 점유율이 붕괴될 우려를 하면서 결국 증산으로 돌아갔다. 1986년 사우디가 증산으로 돌아서면서 그 파장이 상당히 커지기 시작했다. 중소형 독립계 석유회사들이 줄도산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붕괴

이같은 사우디의 증산 정책은 소련에게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천연자원을 수출해서 먹고 살던 소련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2년 11월 29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NSDD-66’에 서명했다. NSDD란 국가안보결정지침(National Security Decision Directives)의 줄임말로 소련에 대한 비밀경제전쟁을 의미했다. 내용은 금융봉쇄, 고도기술·석유자원에 대한 타격을 담고 있다. 이는 G7의 소련산 천연가스 매입 중단 및 신규계약 금지, 노르웨이의 북해산 유전 활용 등이다. 여기에 스타워즈라고 해서 미사일 방어체계 경쟁을 하면서 군비 경쟁이 벌어졌다. 이는 소련의 재정난을 더욱 심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흉작 등으로 인해 곡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소련의 경제는 더욱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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