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으로
농업생산력은 인구의 증가로 이어지게 됐다. 문제는 생필품의 생산 대부분을 비잔티움이나 이슬람 상인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생필품은 늘 부족했고, 그 부족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아시아(현 튀르키예)와 예루살렘의 정복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종교적 신념을 내세운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 됐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면서 전쟁물자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급격한 도시화가 이뤄지게 됐다. 급격한 도시화는 인구의 밀집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기존 농노제에서는 인구가 증가해도 인구 분산 현상이 있었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구는 도시로 몰리게 됐다.흑사병의 유행
14세기 흑사병의 유행은 중세유럽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변화를 초래했다. 흑사병의 원인으로 쥐떼를 제목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구의 증가와 급격한 도시화이다. 실제로 인구 밀집도가 떨어진 지역에서는 흑사병의 피해가 적었다. 12세기부터 13세기 유럽에서는 인구가 급격히 성장했지만 농업생산량이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작지는 한정적인데 반면 농업생산량이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되면서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흑사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유산을 상속받는 사람이 한정되게 되면서 엄청난 상속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됐고, 이것이 훗날 자본가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게 됐다. 이는 농노제가 붕괴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그것은 중세유럽의 종언을 알리는 것이었다. 즉, 농노제보다 자유농민을 유지하는 것이 토지를 소유한 봉건영주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득이 되게 되면서 13세기 들어 영주가 현금을 받고 농노를 해방시켰다. 즉, 평생 토지에 얽매여 살게 하는 농노제보다 자유농민을 통해 경작을 하게 하는 것이 영주들 입장에서는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방된 농노는 훗날 산업혁명 시기에는 공장 노동자가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