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 유치, 비관적인 전망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소식이 들리면서 과거 88서울올림픽 유치 성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초 박정희 정권 당시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했지만 19872년 뮌헨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 테러’가 발생했고,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올림픽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여기에 일본 나고야에서 먼저 올림픽 유치에 뛰어들었고, 누가 보더라도 나고야가 올림픽을 유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고야는 1977년부터 올림픽 유치를 준비해왔었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는 승산이 없었다. 이에 서울은 달랑 3표가 나올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그 3표는 우리나라, 미국 그리고 대만이었다.정주영 드디어 나서다
이때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앞장 섰다. 정 회장은 유치위원들에게 저돌적으로 들이대기 시작했다. 일단 서독 바덴바덴에 도착했을 때 영국 IOC 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식사를 했는데 영국 IOC 위원 중 한 명이 정 회장에게 “체육계에 얼마나 일했냐”고 물었다. 이에 정 회장은 “처음 일하는 것”이라고 하자 유치위원은 “초보자를 내보냈다”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정 회장은 일본이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엄청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는데 만약 나고야 올림픽이 유치된다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면서 영국 IOC 위원을 긴장시키게 만들었다. 당시 영국은 일본과 경제적으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 유치위원들에게는 충분히 긴장하게 만들었다.수제꽃다발까지
당시 일본 측은 나고야 유치를 위해 세이코 최고급 시계를 세트로 IOC 위원들에게 선물을 했다. 그야말로 물량공세를 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오히려 역공을 펼쳤다. 그것은 매일밤 IOC 위원들이 숙식하는 호텔방에 현대그룹 주재원 부인들이 밤새우며 정성으로 만든 고급 수제꽃다발 생화를 매일 바꿔가면서 준비했던 것이다. 아울러 메모도 함께 놓았다. 이것이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훗날 정 회장은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올림픽과 관련된 사업을 아예 하지 않았고, 이에 1원의 수익도 얻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만큼 정 회장은 올림픽 유치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아디다스 때문에
또 다른 유치 성공 전략은 프리젠테이션 당시 일본 측은 일본어로 설명했지만 우리 측은 영어로 설명을 한 것도 있다. 이와 더불어 ‘아디다스’ 문제도 있었다. 당시 아디다스는 올림픽 영향력이 상당히 컸다. 올림픽 유치에 있어서 아디다스의 입김이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미즈노’와 ‘아식스’라는 자체 브랜드가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프로스펙스’가 있었지만 ‘아디다스’ 입장에서는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올림픽 유치하는 것이 보다 덜 경쟁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아디다스는 동구권과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 진출을 했고, 이들 제3세계가 올림픽 유치에 중요한 표심 역할을 했다. 아디다스 입장에서 일본이 만약 올림픽을 유치한다면 제3세계에서 미즈노 혹은 아식스와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올림픽 유치로 급격히 기울어졌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