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고의로 일으켜
해당 대기업은 기발한 방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바이어들로부터 수주 받은 물건을 수출할 때 국내에서 노는 선박을 자신들이 직업 임대해 화주가 선주를 겸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화물을 빨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 화물선 선장실에 화재를 고의로 일으켜 부두에 접안해 물건을 내리게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전차상륙함을 통해 물건을 실은 트럭을 임시도로가 깔린 해안에 상륙시켜 운성을 했고, 헬기까지 동원해서 하역을 하게 했다. 물건이 하역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가 항구에 계속 정착해 있다는 것은 비용이 계속 나가기 때문에 기발한 방식을 통해 물건을 빨리 하역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비슷할 정도로 기발한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대기업으로
1977년 경흥물산을 인수해 패션업에 진출하고, 동아공업, 울산엔지니어링, 호텔내장산, 율산제화, 율산공업전문학교 등으로 계열사 수를 11개로 늘렸다. 이에 1978년 율산실업이 정부로부터 종합상사로 지정됐다. 경기도 이천 부지는 통일그룹에 팔고, 서울 잠실 석촌호수 부지를 사들여 돈을 벌었다. 하지만 1978년 박정희 정부가 8.8 투기억제조치를 단행하면서 율산그룹의 주력사업이었던 건축자재수출을 금지하면서 심각한 자금압박을 받게 됐다. 아울러 그해 추석에는 남성 기성복 '밤빔' 판매직원들이 중앙청(현 정부서울청사)에서 선물티켓을 마구 뿌리다 청와대 사정반에 적발됐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주택성 아파트 공사 입찰마저 경쟁 업체들의 방해로 무산되면서 종합상사 자격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1979년 신선호 대표가 청와대 직원들을 사칭한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고 풀려나면서 청와대 눈밖에 나게 됐고, 신선호 대표는 비리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았고, 계열사들은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그룹 해체 이후 신선호 대표는 서울종합터미널을 지키면서 1994년 ‘센트럴시티’ 착공에 들어갔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