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
[오늘 통한 과거리뷰]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2.2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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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 한 장면.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김한민 감독 ‘노량 : 죽음의 바다’가 개봉일에 ‘서울의 봄’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21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노량’은 개봉일인 전날 21만6천여명이 관람해 1위를 차지했다. 매출액 점유율은 51.1%다. 줄곧 1위를 달려온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 개봉일 관객 수(20만3천여명)보다도 많았다.
이순신 삼부작 마지막 편인 ‘노량’은 이순신(김윤석 분)이 노량해전에서 명나라 수군과 연합해 왜군에 대승을 거두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순신 장군과 선조의 관계

이순신 장군과 선조의 관계는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는 것은 역사적 기록에도 있다. 워낙 좋지 않은 관계이다보니 일각에서는 이순신 장군 자살설도 나올 정도였다. 노량해전이 끝나고 나면 임진왜란이 끝나는 것이고,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 의해 정치적 숙청을 당해 유배를 떠나거나 사약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박대한 기록은 여기저기 나와 있다. 선조는 정유재란 당시 왜군들의 역정보에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에게 부산포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왜군들의 역정보라면서 출전을 거부했고, 결국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을 하고 원균을 앉혔다. 원균 역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앉았지만 부산포로의 진격은 무리수라는 것을 선조에게 알렸지만 선조는 무조건 부산포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했다.

이순신 기용해야 한다고 했지만

징비록 초본에 의하면 선조는 칠천량 패전 이후 이순신 장군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순신 장군을 다시 기용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김명원과 이항복이 “이순신을 재기용해야 한다”고 했지만 말없이 회의석상을 나가버린 것이다. 이에 남아있는 신하들이 의결해서 통제사 복직이 결정됐다. 즉, 이순신 장군이 칠천량 패전 이후 통제사로 복직된 것은 선조의 생각이 아니라 신하들의 우격다짐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선조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정유년 12월 이순신 장군이 상중이라고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자 고기반찬을 하사했다. 얼핏 보면 신하의 건강을 염려한 자비로운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와 아들의 죽어서 상중인 상황 속에서 고기반찬을 내린 것은 고인 능멸이라고 할 수 있다. 난중일기에서는 선조가 고기반찬을 하사한 것에 대해 이순신 장군은 “비통, 비통하다”고 적었다. 물론 신하가 상중에도 고기를 선물한 사례도 있었다. 세종대왕은 황희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고기를 선물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하사한 고기선물과 선조가 하사한 고기선물은 의미가 다르다. 세종은 황희에 대해 무한신뢰를 보냈지만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 고기반찬을 내렸다는 것은 의도가 불순할 수밖에 없다. 칠천량 해전 이후 선조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듯하면서도 수군을 철폐하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 역시 이순신 장군을 능멸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순신 장군이 수군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군을 철폐한다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손발을 완전히 묶어 버리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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