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이야기 4] 눈 오는 날 고기국수를 만들어 먹다가...
[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이야기 4] 눈 오는 날 고기국수를 만들어 먹다가...
  • 김민수 여행작가
  • 승인 2023.12.28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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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선목욕탕 원로들, “우리는 주로 멸치국수를 즐겨 먹었다”
- 제주 최초의 고기국수집인 골막식당, 1989년에 오픈
- 돼지고기 육수에 모자반 풀면 몸국, 고사리 넣으면 육개장
양도 많고, 맛도 좋은 고향생각의 고기국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양도 많고, 맛도 좋은 고향생각의 고기국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파이낸셜리뷰=김민수 여행작가] 오늘 점심 메뉴는 국수다. 난 고기국수 아내는 비빔국수, 취향대로 먹는다. 집에서 먹는 고기국수라고 해봐야 시중에 파는 사골국물에 중면을 삶아 넣고 먹다 남은 수육을 올리면 끝이다. 대충 흉내를 낸 음식이지만, 고기가 들어간 것이니 고기국수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아무튼 고기국수다. 

고기국수의 옛 이야기

본디 제주의 고기국수는 돼지 뼈를 고아 국물을 썼다. 흔히 먹던 음식은 아니다. 제주에서는 잔칫날에나 초상 때 돼지를 잡있다. 살코기는 돔베고기로 쓰고 뼈와 내장은 별도로 삶았다. 그렇게 나온 돼지고기 육수에 모자반을 풀면 몸국이 되고 또 고사리를 넣으면 제주식 육개장이 된다. 그리고 간혹 중면을 말아 수육을 얹으면 고기국수가 완성이다.
눈 내리는 날, 제주 초가의 풍경. 이런 날이면 따뜻한 고기국수가 떠 오른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눈 내리는 날, 제주 초가의 풍경. 이런 날이면 따뜻한 고기국수가 떠 오른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잔칫날이면 지금도 몸국을 내놓는 집이 있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잔칫날이면 지금도 몸국을 내놓는 집이 있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제주에서는 수육을 간장에 찍어 먹는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제주에서는 수육을 간장에 찍어 먹는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제주식 육개장.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제주식 육개장.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잔칫날의 돼지고기는 도감이 관장했다. 도감은 상방(마루)에 앉아 도마를 앞에 놓고 삶은 돼지고기를 썰어 손님들에게 나눠주는 임무를 가졌다. 제주에서는 도마를 돔베라 부른다. 그러다보니 자연 돔베고기가 된 셈이다. 이때 손님들은 반이라 부르는 접시를 들고 다녔는데 모든 반찬과 과일 등을 그것에 받았다. 그리고 도감이 건네는 몇 점의 돼지고기로 반을 덮은 후 별도로 제공되는 밥, 국과 함께 먹었다. 경험 많은 도감일수록 얇고 넓게 썰어내는 칼질 솜씨를 자랑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뭐든 골고루 돌아가도록 평등하게 배급해야 했지만, 도감의 권한은 실로 막강했다. 가까운 사람이 오면 한두 점 더 얹어 주는 건 예사였고, 평범한 국수를 고기국수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표선목욕탕 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제주에 처음 건면 공장이 세워진 것은 일제 강점기로 기록돼있다. 이후 밀가루는 원조에 의지하는 정도였고 60~70년대에 들어서고야 국수가 보편적 음식이 되었다. 아내가 다니는 표선목욕탕의 원로 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제주민들은 주로 멸치국수를 먹었단다.  
 

일도국수의 고기국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일도국수의 고기국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국수 문화거리의 숨은 맛집, 일도국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국수 문화거리의 숨은 맛집, 일도국수.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쉬 납득이 가는 얘기다. 멸치 쪼가리야 바다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짧았던 제주에서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봐도 가끔씩 할머님이 만들어 주시던 국수그릇에는 고기가 담겨있지 않았다. 20~30대에 벌초를 다니고 제주여행을 할 때만 해도 고기국수 식당은 도통 본 기억이 없다. 사실 제주 최초의 고기국수집은 제주시에 있는 골막식당으로 1989년에 오픈했다. 의외로 짧은 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베지근한 대표 먹거리 

문득 돌아보니 어느 순간 정말 많은 고기국수 식당이 생겨났다. 제주도가 선정한 향토음식 20선에도 버젓이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사실 고기국수는 맛좋다. (제주에서는 ‘맛있다’ 대신 ‘맛좋다’라고 한다) 몸국과 더불어 베지근(기름져서 속이 든든할 것 같은 맛)함의 쌍두마차다. 그리고 일반 국수에 비해 양도 많아 한 끼 식사로도 든든하다.  요즘은 순수 돼지육수 대신에 멸치육수나 닭 육수를 섞어 쓰기도 한다.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취향 탓이다. 관광객들은 새로운 맛을 경계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험했던 음식과의 공통분모를 찾는다. 그로 인해 이미 고추장이 들어간 물회와, 고사리와 고기를 죽처럼 갈아 낸 육개장도 등장했다. 

서귀포 고향식당 

지금껏 제주에서 먹었던 최고의 고기국수는 서귀포에서였다. 그날도 아침부터 베지근한 고기국수가 먹고싶었다. 여기저기 연락해서 맛집을 수소문해 보던 차, 식당을 소개해준 이는 도민이 아닌 대구에서 가끔 내려와 여행을 하는 친구였다.
고기에 김치를 얹어먹어도 좋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기에 김치를 얹어먹어도 좋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향생각은 배추김치와 파김치가 일품이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고향생각은 배추김치와 파김치가 일품이다.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 부근에 있는 고향생각.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 부근에 있는 고향생각.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형, 제가 웬만한데 다 가봤잖아요. 서귀포에 있는 고향식당에 가서 고기국수 드세요. 후회 안하실 거예요.” 육지와 제주를 골고루 경험한 녀석의 입맛을 밎어 보기로 했다. 고향생각은 업력 30년의 고기국수집이다. 주인아주머니는 부산 출신으로 입도 40년 차 비로소 제주민이다. 제주와 부산 사투리가 반반씩 섞인 말투는 절대 상냥하지 않다. 고기국수가 상위에 올랐다. 기대했던 외모를 지녔다. 그릇 가득 담긴 면과 고기가 제주말 그대로 듬삭했다. 고향식당의 특징은 국수를 시키면 때깔 좋은 김치 반포기와 파김치가 온전한 모습으로 상위에 오른다는 것이다.  이미 막걸리 한 병, 그리고 평소 같았으면 수육 한 접시를 추가했겠지만 고기가 끊임없이 올라오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도톰하고 쫄깃한 중면발에 군내 없는 담백한 국물. 고기 육질의 탄탄함까지 더해지니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게 없었다.  아, 그리고 적당히 익은 김치를 쭉쭉 찢어 얹어 먹는 맛이라니. 꾹꾹 채워진 포만감이 저녁까지 이어진 아주 맛 좋은 기억.

■ 고향생각

 ▲ 제주 서귀포시 동문동로 15  ▲ 영업시간 : 매일 11:00 - 20:00  ▲ 고기국수 9,000원 멸치국수 7,000원 돔베고기 25,000원 비빔국수 8,000원 
제주의 평범한 밥상.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제주의 평범한 밥상. /사진=김민수 여행작가
야심 차게 비벼낸 비빔국수의 양이 좀 많다 싶었는데 아내가 결국 남겼다. 먹나 남은 국수로 저녁을 대신할 게 뻔하다. 대신 먹어줄 걸 그랬나 했지만, 이미 나도 포화 상태다. 눈이 많이 왔다. 마당에 눈 길을 만들고 들어오니 쟁반으로 덮어놓은 비빔국수에 자꾸만 눈이 간다. 배가 꺼지는 대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소고기에 와인 한잔하려면 반드시 해치워야 할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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