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1990년 1차 깡통 계좌 정리
1980년대는 화려한 증시 랠리가 있었다. 1985년부터 1989년 초까지 종합주가지수가 6~7배 상승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초강세로 기울면서 원화 약세 속에 한국 수출에 모멘텀이 발생됐다.ㅇ 국가 부도 IMF 사태
97~98년 찾아온 IMF 사태는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경제, 사회, 가정 모두에 악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도 대폭락 장을 피할 수 없었다. 94년에 1145p에 있었던 주가지수가 1998년 277p까지 1/4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개별 종목에서는 상장폐지와 파산은 IMF 사태 속에 셀 수 없이 이어졌고, 당시 투자자들은 심각한 투자손실을 겪게 된다. 1980년대 잘 나가던 동서증권, 고려증권, 쌍용투자증권, 장은증권 등 외환위기 직격탄 맞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것은 증권사가 호황기에 과잉투자를 하거나 전략상 오류를 저지르면서 리스크 관리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이다. 기업들 줄도산, 금융회사 파산, 구조조정, 대규모 정리해고, 비정규직 양산, 금융 불안 등 한국경제 근간이 뒤흔들렸다. IMF의 계획에 따라 한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대우그룹, 한보그룹, 삼미그룹, 기아그룹, 진로 등)과 은행마저도 무너졌다. 19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는 대동·동화·동남·경기·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의 퇴출을 발표했다. 외환위기 당시 약 9만 명의 금융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무분별한 기업 대출과 외환위기가 초래한 은행 구조조정은 2006년까지 멈추지 않았다. 외환위기 직전 16개 은행원도 3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소위 ‘은행 불패’의 신화가 무너진 것이다. 은행업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가 수년 만에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제일은행은 직원 약 4000여 명을 감원하고 지점 48개를 폐쇄했다. 당시 홍보팀에서 일했던 이응준씨가 폐쇄 직전 테헤란로 지점 직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 ‘눈물의 비디오’는 지점 통폐합과 인력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 은행원들의 심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당시 27개였던 은행 중 14개가 사라졌다. 정부는 헐값에 은행들을 해외에 매각하고 통폐합시켰다. 대우채권의 부실화로 2000년 한빛, 평화, 광주, 경남은행 등 새롭게 독자 회생 불가 판정을 받은 은행이 속출했다. 이들 4개 은행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2001년 4월 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를 설립했다. 상업은행, 한일은행 한빛 은행 평화은행은 우리은행에 합병당한다.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서 선도 은행을 선점하려는 대형화 전쟁도 불붙기 시작했다. 2001년 국민은행은 주택은행을 흡수합병하여 ‘메가뱅크’시대를 예고했다. 서울은행, 충청 보람은행 등은 하나은행으로 넘어갔다. 조흥은행은 2003년 신한금융지주에 팔렸다. 109년 최고 역사의 ‘조흥’ 간판은 영원히 사라졌다. 1990년대 후반에는 투자신탁회사가 몰락했다. 1980년대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의 이른바 3저 속에서 해외원유, 외자, 수출에 크게 의존해 경제발전을 계속해온 한국은 의외의 호기를 맞았다. 이런 3저 호황 속 전성기를 누렸던 한국투자신탁·대한투자신탁·국민투자신탁은 1989년에 첫 위기를 마주했다. 이들은 급락하는 코스피를 방어하려는 정부의 주문대로 주식을 쓸어 담는 시장 개입에 나섰으나 야속하게도 주가는 계속 하락했다. 이 사태로 자기자본을 까먹은 3대 투자신탁회사는 환매 요청이 빗발쳤던 외환위기라는 높은 파도를 결국 넘지 못했다. 그런 펀드 업계도 5년의 암흑기를 거친 뒤에 미래에셋이 주도한 펀드 열풍의 시대를 맞아 부활했다. 이후에도 금융투자업계와 금융투자협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위기 등을 겪었다. 하지만 오늘날 금융투자산업은 주식시장 시가총액 2천400조원·자산운용시장의 순자산총액 1천500조 원이라는 성과를 달성했고, 금융 선진국 못지않은 혁신적인 금융 투자서비스를 다수 선보였다. 지금은 냉혹한 대내외 경제환경과 더불어 해외 대체투자 손실과 국내 부동산 PF 손실, 기업공개(IPO) 시장 침체, 각종 금융사고가 업계와 협회의 고민거리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