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철강 공동 개발
현대적 개념의 유럽연합을 처음 제기한 것은 프랑스였다. 1929년 프랑스 외무장관은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범유럽연합 형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대공황 및 파시즘 대두로 인해 논의가 흐지부지해졌다. 그러다가 2차 대전 이후 프랑스 외무장관을 역임힌 로베르 쉬망이 1950년 5월 쉬망플랜을 독일에 제안했다. 주요 내용은 루르와 자르 지역 석탄과 철강을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개발하자는 것이다. 서독 측에서 즉각적인 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베네룩스 3국과 이탈리아가 가세하면서 1951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가 등장한다.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인하여 강대국에서 몰락한 프랑스는 경제 공동체 설립에 만족하지 않고, 자국의 유럽 내 종주권 회복을 위하여 적극적인 통합을 연이어 꾀하면서 유럽 방위 공동체(EDC)와 유럽 정치 공동체(EPC)를 제안한다.서유럽이 재건되면서
서유럽이 재건되면서 진행되면서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ECSC의 기능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되면서 1955년 메시나, 그리고 1956년 빈에서 열린 유럽 각국들의 정상회담 끝에 1957년 로마 카피톨라노 언덕에서 ECSC를 유럽 경제 공동체(EEC)로 격상하며, 향후 12년에 걸쳐 무역장벽을 모두 제거해 공동시장을 구축한다는 로마 조약이 발인되게 된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