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젠더 갈등
[역사속 경제리뷰] 젠더 갈등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12.03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우리나라에서 젠더 갈등은 2015년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규모 수준이었고, 사회적 비용이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2015년 전후 젠더 갈등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2018년 이후 젠더 분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정치권의 대선과 맞물리면서 큰 이슈가 되기 시작했고, 2020년 들어오면서 젠더 갈등이 ‘혐오’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창출했다.

2015년 전후

2015년 이전까지는 주로 군가산점 폐지 등이 젠더 갈등의 주요 이슈였다. 가산점이 3점이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불리한 제도이기 때문에 가산점 폐지를 두고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 있었지만 남성들 중에서도 가산점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군가산점 폐지 문제는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하지만 2010년 일베저장소가 탄생하면서 온라인 상에서 점차 젠더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베 이전에도 여성 혐오 등이 있어왔지만 일베저장소가 여성 혐오를 대표하는 사이트가 됐고, 이것이 나중에 메갈리아-워마드 등 미러링 사이트 등이 출현하게 됐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났다. 아울러 미러링을 명분으로 다양한 남성혐오가 탄생하게 됐다.

강남역 살인사건 계기로

이에 인터넷에서는 ‘남혐’ ‘여혐’으로 젠더 갈등이 본격화됐다. 그러다가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강남역 시위를 하면서 젠더 갈등이 오프라인으로 옮겨지게 됐다. 또한 래디컬 페미니즘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와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페미니즘이 정치권과 접목이 되면서 다양한 목소리로 분출됐다. 2018년 5월 혜화역 시위 등을 거치면서 대규모 시위로 변화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오프라인에서는 젠더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엄청난 갈등을 보였다. 그러면서 소위 젠더 갈등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감정적 대립이 이뤄졌다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젠더 갈등의 이론적 기반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2021년 재보선에서 정치권은 젠더 갈등을 논의를 하기 시작했고, 대선을 거치면서 역시 젠더 갈등이 불거지면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까지 나왔다.

한국 페미니즘은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시초는 19세기 구한말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들여왔다. 그러나 일부 페미니스트는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을 지나오면서 부역자 노릇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이런 이유로 그들을 진정한 페미니스트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재도 논란이 되고 있다. 페미니즘이 본격화된 것은 민주화 이후 1990년대 부터이다. 민주화 이후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1990년대 많이 이뤄지면서 점차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기독교적인 보수주의 페미니즘과는 차별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다른 페니미즘이 받아들여졌는데 그것이 래디컬 페미니즘이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면서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언론과 방송의 옹호와 지지가 있으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일방적으로 동조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2020년 들어서면서 정치권에서도 페니미즘과 결탁을 하면서 그들의 표심을 호소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점차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것에 대한 반발로 반페미니즘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