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건과 공업화의 시도(1945-1960)
해방 이후 미군정(1945-1948)과 이승만 초대 정부(1948-1960) 및 4.19혁명(1960) 등 1945-1960년 시기는 정치적 혼란과 격변의 시기였다. 8.15 해방과 함께 분단된 한반도는 북한에 중공업시설과 전력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한국은 농업 및 경공업 중심으로 북한의 전력송전 중단(1948.5.14.)으로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북한의 남침에 의한 6.25전쟁(1950-1953)의 폐허 위에서 한국경제는 1953-1960년 간 연평균 5.3%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식량부족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원조에 의존하던 이승만 정부의 경제·무역정책은 원조경제와 수입대체공업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50년 대 수입품은 휘발유, 원면 등 섬유산업 중간재, 밀과 설탕 등 소비재와 섬유기계와 발전기 등 자본재로 광물·수산물이 대부분인 수출의 8-10배 규모였고 무역수지 적자는 GDP의 10%를 상회했다. 1953-1962년간 미국 무상원조는 국내 GDP의 14.2%로 대규모였으며, 미국의 대한 원조는 해방이후 1969년 말 까지 무상원조 44억$, 유상원조 4억$로 한국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