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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 1년 만에 주가 4배 올라
새롬기술이 현대자동차 시가를 누르다!
신경제의 혁명 끝은 파국
[파이낸셜리뷰] 새천년(new millennium)을 앞둔 1990대 말 세계는 첨단 기술이 이끄는 미래기술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을 누를 때 인류는 새로운 세상에 다가왔다고 느꼈다.
미국 경기도 낙관론에 젖었고 인터넷과 PC 보급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혁명을 외쳤다. 기존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신경제’의 지평을 연 첨단 기술에 열광했다. 인터넷은 정보 격차 해소와 가상공간이라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다.
아마존, 야휴 등이 내놓은 눈부신 사업모델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기업가치를 과거의 이익으로 평가하는 시대는 저물었다’라는 주식전문가와 미디어가 외쳤다.
IMF 직후 한국 증시는 단숨에 주가지수 1000p까지 상승한다. 단 1년 만에 주가지수 277p에서 1000p까지 4배 상승한 것이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당시 명예퇴직 분위기 속에 퇴직금을 받고 퇴사한 중장년분들 중 상당수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1년 만에 주가지수가 4배 뛰었으니 분위기는 증시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다. 그리고 99년 증시 분위기는 하반기로 들어가면서 코스닥 랠리로 이어진다. 새롬기술을 대장으로 코스닥 버블이 폭발하니 기술주들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은 집중되었다.
그리고 1999년 바이코리아 열풍 속에 1차 펀드 붐도 불면서 전 국민적인 주식투자, 증권투자 분위기가 형성된다. 당시엔 "펀드"라는 용어를 모르면 구세대 사람 취급받을 정도였다.
그랬던 분위기가 2000년 IT버블이 붕괴되면서 화려한 증시는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하락장이 버블붕괴 속에 심각한 투자손실을 경험하게 된다. 코스닥지수가 2000년에 1/5토막이 났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1년 만에 IMF 사태급의 상황이 증시에서 벌어진 것이다.
워낙 전국민적인 주식투자/펀드투자 열풍이 있다보니 전국 가정마다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보았고, ‘주식투자=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이후 2001~2002년 반등장이 있었지만, 카드를 쉽게 발급하던 당시 분위기 속에 카드빚으로 미수 풀베팅하던 개인투자자들은 손실만 누적되다가 2000년 초반 카드대란의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신음하던 한국에서조차 놀라운 환경이 펼쳐지고 인터넷광고 벤처업체의 폭발적인 주가 상승이 이어갔다. ‘인터넷으로 광고를 보면 현금을 준다’는 독특한 사업모델로 창업한 골드뱅크 30세 김진호 사장은 1999년 2월 초까지 15일 연속 상한가로 치솟자 국정감사에까지 나오는 촌극이 벌어졌다.
새롬기술(현 솔본)은 ‘무료인터넷 전화’ 사업을 내세워 1999년 8월 상장 6개월 만에 무려 150배 가까이 폭등해 단숨에 코스닥 황제주로 자리 잡았다. 시가총액이 3조로 불어나 현대자동차마저 눌렀다. 소프트웨어업체 한글과컴퓨터, 국내 최대 포털 다우커뮤니케이션도 수개월 만에 수십 배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벼락부자가 쏟아졌다.
삼성 SDS 사내 벤처로 1997년 출범한 검색서비스업체 네이버컴, ‘리니지’란 게임으로 관심을 모은 엔씨소프트 등이 코스닥 상장에 입성했다. 벤처통계시스템에 따르면 1998년 말 2,000개 수준이었던 벤처기업이 2001년 1만 개를 돌파했다. ‘아직도 거래소 주식 투자하세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1999년 764로 시작한 코스닥지수는 6개월 만에 2,000선을 돌파했다. 당시 테헤란 벨리에는 매일 몇차례 고급호텔에서 투자설명회가 열렸고, 코스닥 벼락부자가 생겼다.
코스닥 시장은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폰지(다단계 사기) 형태로 불러들였고 ‘묻지마’ 투기장으로 변해갔다. 기업 이름에 닷컴 인터넷 이름만 넣어도 돈들이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창피한 이야기지만 인터넷 주소만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투자하기도 했다. 2000년 새해가 밝자 투자자들은 심상친 않은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연도의 앞자리가 바뀌면 컴퓨터 인식 오류가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Y2K’ 도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대다수 닷컴 기업은 영업적자에 허덕이고, 주가를 떠받칠 연료가 바닥이 난 것이다.
20000년 2월 7일 코스닥지수가 사상 최대폭(10%)으로 급등하는 화려한 불꽃을 피운 뒤 다음 달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0년 4월 17일에는 11.4% 폭락하며 버블 붕괴의 신호탄을 쐈다.
미국 중앙은행은 1년에 걸쳐 연 5%에서 6.5%까지 올렸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2000년 10월 5.25%까지 올렸다. 금리 오르면 주가 하락이 된다. 거품이 거치면서 일부 벤처기업인들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났다.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사건으로 불리는 이르나‘3대 게이트’가 2000년 10월부터 연달아 터져나왔다.
나스닥은 2002년 1,300선이 무너지면서 그린스펀이 비이성적인 과열을 경고한 1996년 12월보다 낮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코스닥 지수는 2000년 말 525로 같은 해 사상 최고(2,834)와 대비해 81.5% 떨어졌다. 새롬기술은 고점 대비 50분의 1로 추락했고, 골드뱅크는 2009년 상장폐지됐다.
투자자들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부분의 초기 투자자와 투기꾼은 버블이 일어나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자만과 탐욕, 무식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마치 도박 중독과 비슷하다. 증권 붕괴는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고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이 위협받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닷컴 버블은 투기 세력이 ‘신경제’에서 기술 혁신이 끝없이 뻗어 나갈 것이라고 베팅하는 가운데 엄청난 광기와 결국에는 손실을 가져왔다.
근거없는 기대감과 값싼 주식전망, 비이성적 과열, 요행을 바라는 증권 투자해서는 안된다. 투자하기 전에 기업지도자의 책무를 체크해야 한다. 경영자의 첫 번째 윤리적 책무는 이익을 내는 것이다. 이익 지향은 그 어떤 목표보다도 기업의 생존을 돕고, 주주 및 이해관계자의 복지에 도움이 된다. 기업이 성공해야 직원도 사회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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